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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제절 :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 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단 4:17)

시작하는 말
 
  세 상에는 참으로 문제가 많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도덕, 환경··· 문제 아닌 것이 없고, 문제없는 데가 없다. 그런데 그러한 문제의 근원은 언제나 사람이다. 모든 문제는 언제나 사람이 만든다. 사람이 문제이다. 그러므로 모든 문제의 대답도 역시 사람이다. 사람이 대답인 것이다. 사람이 변화되기 전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변화되지 않는다. 사람이 변화될 때 모든 것이 변화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변화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일은 없다. 사람이 변화되는 것보다 더 큰 일은 없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일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최대의 이적(異蹟)이다. 왜냐하면 사물의 본질을 달라지게 하는 것이 이적인데 이적 중의 이적은 사람이 달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런 최대의 이적이 기록되어 있다.



 ▶ 왕의 두 번째 흉몽

 1.태평성대가  계속되던 어느 날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신상에 관해 알려주는 어떤 꿈을 꾸었는가?

  "나 느부갓네살이 내 집에 편히 있으며 내 궁에서 평강할 때에 한 꿈을 꾸고 그로 인하여 두려워하였으되 곧 내 침상에서 생각하는 것과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을 인하여 번민하였었노라" (단 4:4, 5)

  설명 다니엘서 2장의 신상(神像) 해석과 3장의 금 신상 경배 사건을 통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다니엘과 세 친구가 섬기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심을 확실히 깨닫고 얼마 동안 하나님을 섬기는 듯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고 태평성대(太平聖代)가 계속되면서 왕은 다시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기고만장(氣高萬丈) 해져서 매사에 자신을 높이고 모든 영광을 자신에게 돌렸다.

 2.왕이 꾼 꿈의 내용은 무엇이었는가?

  "내가 침상에서 나의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이 이러하니라 내가 본즉 땅의 중앙에 한 나무가 있는데 고가 높더니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단 4:10, 11).

 3.꿈에 본 거대한 나무에 대하여 하늘에서 어떤 불길한 명령이 전달되었는가?

  " 내가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 가운데 또 본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왔는데 그가 소리 질러 외쳐서 이처럼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그 가지를 찍고 그 잎사귀를 떨고 그 열매를 헤치고 짐승들로 그 아래서 떠나게 하고 새들을 그 가지에서 쫓아내라" (단 4:13, 14).

 4.꿈에 본 거대한 나무가 찍혀 넘어지고 난 뒤에 계속하여 어떤 일이 그 나무에 일어나리라고 통고되었는가?

  "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를 땅에 남겨 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으로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땅의 풀 가운데서 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리라 또 그 마음은 변하여 인생의 마음 같지 아니하고 짐승의 마음을 받아 일곱 때를 지나리라" (단 4:15, 16).

 ▶ 꿈의 목적

 5.꿈을 통고한 하나님의 천사를 가리키는 하늘의 순찰자는 이 꿈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밝혔는가?

  "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니 곧 인생으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로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 알 게 하려 함이니라 하였느니라" (단 4:17).

 6.이 불가사의한 꿈을 아무도 해석하지 못하자 왕은 다니엘에게 또다시 어떤 요구를 했는가?

  " 나 느부갓네살 왕이 이 꿈을 꾸었나니 너 벨드사살아 그 해석을 밝히 말하라 내 나라 모든 박사가 능히 그 해석을 내게 알게 하지 못하였으나 오직 너는 능히 하리니 이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네 안에 있음이니라" (단 4:18).

  설명 앞서 공부한 다니엘서 2장에서 느부갓네살이 꾼 꿈은 처음부터 꿈을 잊어 버렸으므로 해석할 여지가 없었으나 이번에 꾼 꿈은 꿈의 내용은 생생히 기억했어도 해석을 알 수가 없었다. 관례대로 꿈의 해석을 박사들과 점성술사들, 그리고 자문위원들에게 요청했으나 그들은 아무런 해석을 제시하지 못했다. 아마도 꿈의 내용을 보아 흉몽인 것이 분명했으므로 고의로 꿈의 해석을 회피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최선의 대답을 줄 수 있는 인물이었던 다니엘이 또다시 소환되었다. 왕은 다니엘이 하나님의 선지자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7.왕으로부터 꿈의 내용을 들은 다니엘은 어떤 반응을 보였으며 이에 대한 왕의 반응은 또 어떠했는가?

  "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이 얼마 동안 놀라 벙벙하며 마음이 번민하여 하는지라 왕이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벨드사살아 너는 이 꿈과 그 해석을 인하여 번민할 것이 아니니라 벨드사살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 꿈은 왕을 미워하는 자에게 응하기를 원하며 그 해석은 왕의 대적에게 응하기를 원하나이다" (단 4:19).

  설명 꿈의 내용을 들은 다니엘은 얼굴이 창백해졌다. 한껏 교만해진 왕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집행되는 흉한 일이 예고되었기 때문이었다. 다니엘의 표정을 읽은 왕은 그 꿈이 자신에 관한 불길한 내용임을 알아차림과 동시에 다니엘이 진심으로 자신의 복리(福利)와 안전에 대해 깊은 우려와 관심을 가진 진실 되고 충성스러운 신하임을 확신할 수 있었다. 만약 이러한 확신을 주지 못한 채 다니엘이 경솔한 태도로 흉한 해석을 왕에게 고했다면 왕의 분노를 일으켜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 흉몽의 진상

 8.어떤 불길한 해석이라도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된 왕에게 다니엘은 그 나무의 정체를 어떻게 밝혔는가?

  " 왕의 보신 그 나무가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그 고는 하늘에 닿았으니 땅 끝에서도 보이겠고 그 잎사귀는 아름답고 그 열매는 많아서 만민의 식물이 될 만하고 들짐승은 그 아래 거하며 공중에 나는 새는 그 가지에 깃들이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이 나무는 곧 왕이시라 이는 왕이 자라서 견고하여지고 창대하사 하늘에 닿으시며 권세는 땅 끝까지 미치심이니이다" (단 4:20~22).

 9.그 큰 나무를 베어 넘긴 후에 일어난 흉한 일들은 무엇을 뜻하는 내용이었는가?

  " 왕이 보신즉 한 순찰자, 한 거룩한 자가 하늘에서 내려와서 이르기를 그 나무를 베고 멸하라 그러나 그 뿌리의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동이고 그것을 들 청초 가운데 있게 하라 그것이 하늘 이슬에 젖고 또 들짐승으로 더불어 그 분량을 같이 하며 일곱 때를 지내리라 하더라 하시오니 왕이여 그 해석을 이러하니이다 곧 지극히 높으신 자의 명정(命定)하신 것이 내 주 왕에게 미칠 것이라 왕이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으며 하늘 이슬에 젖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낼 것이라" (단 4:23~25 상단).

 10.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그 꿈을 계시로 주신 목적이 무엇이라고 밝혔는가?

  " 그 때에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아시리이다 또 그들이 그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두라 하였은즉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줄을 왕이 깨달은 후에야 왕의 나라가 견고하리이다" (단 4:25 하단, 26).

  설명 오늘날의 이 세상의 모든 통치자들처럼 느부갓네살도 세상은 자신의 뜻대로 다스려지며 역사는 자기가 뜻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것은 치명적인 오해였다. 세상의 장래는 하나님의 손에 달렸으며 역사는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목적을 이루는 과정임을 알아야 했고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목적이 이루어지도록 순종하고 협력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따라서 통치자를 세우거나 폐하는 권한이 하나님께 있음도 깨달아야 했으나 느부갓네살은 전혀 그렇지 못했으므로 혹독한 시련을 통해 교훈을 배워야 했다. 
즉 지금의 모든 권한과 영광을 박탈당하고 7년간 짐승처럼 비천하게 살게 된다는 선고였다. 그리하여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새 사람이 된 후에야 복권(復權)이 되고 공의로 다스리게 될 때 그의 통치권이 확고해지고 나라가 태평해지리라는 예언적인 선언이었다.

 ▶ 집행된 집행 유예

 11.이처럼 불행한 일이 집행되지 않기 위해서 왕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이 라고 제시되었는가?

  "그런즉 왕이여 나의 간하는 것을 받으시고 공의를 행함으로 죄를 속하고 가난한 자를 긍휼히 여김으로 죄악을 속하소서 그리하시면 왕의 평안함이 혹시 장구하리이다 하였느니라" (단 4:27).

 12.불행하게도 왕에게 선고된 집행 유예는 어떤 일로 취소되고 형벌이 즉시 집행되었는가?

  " 이 모든 일이 다 나 느부갓네살 왕에게 임하였느니라 열 두 달이 지난 후에 내가 바벨론 궁 지붕에서 거닐새 나 왕이 말하여 가로되 이 큰 바벨론은 내가 능력과 권세로 건설하여 나의 도성을 삼고 이것으로 내 위엄의 영광을 나타낸 것이 아니냐 하였더니" (단 4:28~31).

  설명 선지자 다니엘은 이미 선고된 느부갓네살 왕에 대한 하나님의 징벌이 집행되지 않도록 속히 회개하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탄원했다. 먼저 지금까지 범한 온갖 죄를 회개하여야 하며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자유하게 함으로써 자신이 진정으로 회개했음을 행동으로 입증하기를 요청했다. 감히 전제군주(專制君主)의 죄를 이렇게 직접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일은 목숨을 위태롭게 하는 일이었으나 다니엘은 왕에 대한 사랑을 확신시킴과 동시에 선지자의 직분을 과감히 수행한 것이다. 철저한 회개를 전제로 하는 일종의 집행유예(執行猶豫)가 선고된 것이다.
참으로 위대한 왕이었던 느부갓네살의 죄는 하나님의 존재와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높이는 교만이었다. 그는 자신이 이룩한 업적을 스스로 찬양하며 자신이 하나님처럼 영광을 받으려는 예배횡령죄(禮排橫領罪)를 범하고 있었다. 그것이 바로 루스벨이 하늘에서 추방되어 사단이 되게 한 죄의 근본이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면 자신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무신론(無神論) 사회에서 공공연히 자행되는 파멸적인 인간의 신격화(神格化)이다.

 13.회개하지 않은 왕에게 무슨 형벌이 어떻게 집행되었는가?

  " 이 말이 오히려 나 왕의 입에 있을 때에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 가로되 느부갓네살 왕아 네게 말하노니 나라의 위가 네게서 떠났느니라 네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거하며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요 이와 같이 일곱 때를 지내서 지극히 높으신 자가 인간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는 줄을 알기까지 이르리라 하더니" (단 4:31, 32).

 14.느부갓네살 왕에게 집행된 형벌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는가?

  "그 동시에 이 일이 나 느부갓네살에게 응하므로 내가 사람에게 쫓겨나서 소처럼 풀을 먹으며 몸이 하늘 이슬에 적고 머리털이 독수리 털과 같았고 손톱은 새 발톱과 같았었느니라" (단 4:33).

  설명 기고만장하던 왕이 하늘의 선고를 듣는 순간 그에게서 사람의 마음(人心)이 떠나고 짐승의 마음(心)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이 자신을 짐승이라고 생각하고 그렇게 행동하는 일종의 정신병이었다. 자신을 소라고 생각하는 정신병인 "보안드로피"(boanthropy)도 있고, 자신을 새라고 생각하는 정신병 "아비안드로피"(avianthropy)도 있다. 참으로 무서운 정신병인데 과거에 프랑스의 찰스 4세, 덴마크의 크리스챤 7세, 영국의 죠지 3세 등도 이러한 정신병에 걸린 예들이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느부갓네살이며 7년을 뜻하는 "일곱 때" 동안 짐승처럼 행동한 것이다. 이 사실은 근년에 발견된 바벨론의 점토(粘土) 문서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 다시 돌아온 인간성 - 인간의 이성

 15.7년이 지난 후에 또다시 어떤 놀라운 일이 왕에게 일어났는가?

  "그 기한이 차매 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더니 내 총명이 다시 내게로 돌아온지라" (단 4:34 상단).

  설명 7년 동안이나 짐승처럼 행동하던 왕이 어느 날 갑자기 허리를 펴고 일어나서 하늘을 쳐다보았을 때 잠이 깨어난 사람처럼 정상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짐승의 마음이 떠나고 인간의 이성이 되돌아온 것이다. 헬라어로 "사람"을 "안드로포스"(anthropos)라고 하는데, "위를 쳐다보는 존재" (the one who looks up)라는 뜻이다. 사람처럼 머리를 꼿꼿이 위로 향하고 사는 생물은 없다. 사람은 위를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무한과 영원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은 하늘을, 하나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짐승처럼 살던 느부갓네살이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사람으로 되돌아왔다. 하나님을 찾아야 사람이 되는 것이다.

 16.인간의 이성이 다시 돌아왔을 때 왕은 즉시 어떤 반응을 했으며 그것은 무슨 뜻이 있는가?

  " 이에 내가 지극히 높으신 자에게 감사하며 영생하시는 자를 찬양하고 존경하였노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요 그 나라는 대대에 이르리로다 땅의 모든 거민을 없는 것같이 여기시며 하늘의 군사에게든지 땅의 거민에게든지 그는 자기 뜻대로 행하시나니 누가 그의 손을 금하든지 혹시 이르기를 네가 무엇을 하느냐 할 자가 없도다" (단 4:34 하단, 35).

  설명 7년간 그를 지배하던 짐승의 마음이 떠나고 인간의 마음이 다시 돌아오자 왕은 즉시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에게 감사를 드리고 영광을 돌렸다. 곧 진정으로 예배worship하기 시작한 것이다.
사 람과 동물을 구별하는 가장 확실한 사회학적인 구분 가운데 하나가 예배 행위이다. 영장류(靈長類)인 침팬지 등 아무리 발달된 영장류도 예배하는 동물이 없으며, 아무리 미개해도 어떠한 형태이든 예배드리지 않는 인간은 없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짐승처럼 생활하던 왕이 비로소 하나님을 예배하기 시작한 사실은 그가 이제야 사람 노릇을 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예배란 무엇인가

생명의 원인은 사랑이다.
사랑에 반응할 때 생명이 태어나고 사랑에 반응할 때 행복이 경험된다.
행복은 사람이 사는 목적이다. 사람은 모두 행복하기를 원한다.
행목은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남녀가 이성(異性)의 사랑에 반응하면 자식이 태어나고 서로가 행복한 부부가 된다.
자식이 부모의 사랑에 반응하면 삶의 보람이 넘치는 행복한 부모와 자식이 된다.
인간이 하나님의 영원한 사랑에 반응하면 영원한 생명이 체험되고 무한한 행복을 경험한다.

예 배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 자녀들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에 대하여 마땅히 해야 하는 생명의 반응이다. 이성(理性)을 가진 인간만이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기 때문에 예배하지 아니하는 사람은 이성를 가지지 못한 짐승 차원의 삶을 살 게 된다. 그것이 느부갓네살의 경험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창조의 목적이요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이며 삶의 의미이며 행복의 절정인 것이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本分)이니라" (전 12:13).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7).

 17.인간의 창조 목적과 예배는 어떠한 불가분의 관계가 있는가?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7).

 18.느부갓네살 왕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어떻게 고백하였는가?

  " 느부갓네살 왕은 천하에 거하는 백성들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에게 조서하노라 원하노니 너희에게 많은 평강이 있을지어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내게 행하신 이적과 기사를 내가 알게 하기를 즐겨하노라 크도다 그 이적이여, 능하도다 그 기사여, 그 나라는 영원한 나라요 그 권병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단 4:1 ~3).

  설명 왕은 자신의 경험을 최대의 이적이라고 고백했다. 병이 낫는 이적보다 더 큰 이적은 사람의 본성이 바뀌어 변화된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지난날, 본능대로 살고 권력을 위해 짐승처럼 살던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인간이 된 사실은 기적 중의 기적이 아닐 수 없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은 인간이 범죄 함으로 짐승처럼 되었다가 복음을 듣고 다시 사람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거듭난 왕은 이 사실을 조서 형식으로 온 나라에 선포하여 자신을 변화시키신 다니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것이다. 이리하여 마르둑을 섬기던 폭군 느부갓네살은 하나님의 전도자 느부갓네살이 된 것이다.

 ▶ 마치는 말

  이 교도(異敎徒)요 폭군이었던 느부갓네살 왕도 세 차례의 경험과 기별을 통해 세상에서는 화려하고 위대했지만 실상은 짐승과 다름없이 살아온 자신의 삶을 청산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을 되찾아 하나님을 예배하고 인간을 사랑하는 새 사람으로 거듭났다. 짐승과 같던 폭군이 하나님의 사랑스러운 자녀가 된 것이다. 지금의 나의 삶은 어떠한가. 그러한 느부갓네살이 새롭게 변화되어 구원을 받았다면 나에게는 더욱 확실한 희망이 있지 않은가.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세 차례의 기별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에는 온 세상에 보내는 하나님의 마지막 세천사의 기별메시지이 선포되어 있다. 같은 내용의 세 차례의 기별이 다니엘서에도 주어졌다.
하 나님을 전혀 알지 못하던 이교도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분의 백성을 핍박하던 느부갓네살은 다니엘과 그의 세 친구를 통해 세 차례에 걸쳐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게 되고 그 메시지에 세상과 자신의 운명이 달린 놀라운 사실을 깨닫게 된다. 

 ▶ 첫 번째 기별
  첫 째는 2장의 사건으로, 세상의 미래를 아시고 역사를 주장하시는 참 하나님이 하늘에 계시다(2:28)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느부갓네살은 지극한 경외심을 가지고 그의 하나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게 되었다. 그것이 온 세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첫 번째 기별인 것이다.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계 14:7).

 ▶ 두 번째 기별
  둘 째는 3장의 사건인데, 참 하나님이 계심을 깨닫고 경배했던 느부갓네살은 오히려 인간적인 자아(自我)가 되살아나면서 권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는 우상을 만들고 거기에 강제로 경배하게 하고 이를 거절하는 세 젊은이를 풀무불에 던져 죽이려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로 세 젊은이가 살아 나오자 거짓 신인 우상을 섬기는 바벨론 종교의 패배를 인정하고 다시 참 하나님을 경배했다. 그것은 요한계시록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 (계 13:15)는 바벨론에 경고된 두 번째 기별에 해당된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8).

  ▶ 세 번째 기별
  셋 째는 4장의 사건으로서, 느부갓네살 왕은 두 번이나 경고와 교훈을 받고도 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대신 극도로 교만하여져서 자기숭배에 빠지게 된다. 마침내 그에게서 인간의 이성이 떠나가고 짐승의 마음이 발동하여 짐승처럼 처신했다. 그것은 안식일에 나타난 창조주 하나님의 속성(屬性)인 하나님의 인(印) 대신 정교(政敎) 일치의 세력에 의해 강요되는 그릇된 예배의 핵심인 짐승의 표(標)를 받게 될 때 마침내 인간에게서 드러나게 될 짐승의 속성이기도 하다. 짐승의 표는 이러한 거짓 예배가 인간의 제도를 통해 강요되는 구체적인 결과이다.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바벨론에 대한 세 번째 경고에 해당된다.

"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은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계 14: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