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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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린도전서 10장 31절).

  우리는 그동안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리를 대강 공부하였습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의 생활, 다시 말해서 참으로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라면 어떠한 생활 태도를 가지고 살아가야 하라 하는 문제를연구하기로 합시다. 이것이야말로 실제적인 문제요, 처음으로 그리스도교를 연구하는 이로서는 퍽 관심을 가질 만한 문제입니다. 이것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으나 우선 가장 중요한 세 가지만 들어 말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신뢰의 생활, 둘째는 순종의 생활, 셋째는 절제의 생활입니다.
 

신뢰의 생활 
  예수께서는 모든 불쌍한 인류를 향하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장 28절)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괴로움에서 벗어나 평안한 쉼을 얻고자 하는 자들은 반드시 예수께로 나아가야 할 것이요, 찾아 나아가서 그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한복음 14장 1절)고 하셨습니다. 우리들의 생활은 근심과 걱정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너희는 근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어떻게 근심하지 않을 수 있느냐 하면, 그것은 신뢰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하셨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이 문제에 대하여 분명히 이르기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라 이는 저가 너희를 권고하심이니라”(베드로전서 5장 7절)고 하였습니다. 권고하심이란 모든 것을 돌보아 주신다는 뜻이니, 베드로는 자기의 깊은 신앙 체험에서 얻은 바를 신도들에게 가르쳐 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다 아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보고 계신다’ 하는 신념이 확고하면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그 제자들에게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장 3절)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어린아이들과 같이 순전하고 솔직하고 겸손해야 할 것을 의미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린아이가 그 부모를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오직 그만 믿는 것처럼 단순성을 가져야 할 것도 의미하신 말씀입니다. 어린아이가 그 부모의 손목만 잡으면 어디를 가나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는 것처럼,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모든 것을 예수께 맡기고 그의 도우심과 돌보심을 믿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장 25~33절).  
  그러므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의식주의 일상생활을 위해서 염려하지 않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의 의(義)를 이루기 위해서 노력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에는 일상생활의 모든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을 허락하셨고 또한 그들은 그 허락을 일상생활에서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징조 
  그런데 신뢰의 생활은 기도의 생활과도 관련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은 기도하기를 그치지 않습니다. 기도는 신앙생활에 있어 호흡과 같은 것입니다. 호흡이 생명인 것처럼 기도 없이는 신앙을 유지하지 못합니다. 명상과 기도는 곧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우리의 사정을 하나님께 고하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시간이 곧 명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기도가 신앙생활에 그처럼 필요하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신도들에게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5장 17절)고 권면하였고, 예수께서도 산상보훈 가운데서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마태복음 7장 7, 8절)고 하셨습니다. 진정으로 구하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는 것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영국의 ‘조지 뮬러’라는 사람은 오직 기도로써 세 고아원을 경영하여 5,200명의 고아를 양육했고 또한 학교를 세워 6만 명의 학생을 교육시켰으며, 60만 부의 성경 단편과 6천만 부의 전도지를 전하였습니다. 기도의 생활은 실로 위대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떤 식으로 기도를 드려야 할까요?  
  “기도는 친구에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 그 심정을 펴놓은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그에게 토로할 필요가 있다. 신령적 생명과 활력을 얻으려면 우리는 반드시 하늘 아버지로 더불어 실제적 교제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실생활에 관하여 그에게 무엇을 말하여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계실 때 그 제자들에게 어떻게 기도할 것을 가르쳐 주셨다. 그는 저들의 매일의 필요를 하나님 앞에 제출하고 저들의 모든 염려를 당신에게 맡기라고 밝히 말씀하셨다”(정로의 계단, 119, 120).  
 

순종의 생활 
  그리스도인의 생활에 있어서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이 아무리 훌륭한 진리일지라도 그것을 알기만 하고 순종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유익이 없을 것입니다. 어떤 중환자가의사의 진찰을 받고도 그의 치료 방법을 따르지 않는다면 병을 고칠 수 없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죄의 병에 걸린 사람은 그리스도의 피를 약으로 마시고 성경의 가르침을 치료 방법으로 삼아 그 주의 사항을 충실히 따라야만 할 것이니, 그밖에는 어떠한 값비싼 약품이나 처방이라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태복음 7장 21절)고 하셨습니다.
  순종하는 일은 참으로 가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주의 임하시는 날에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마태복음 7장 22절)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가 불순종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밝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마태복음 7장 23절)고 하실 것입니다. 불법이란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하고 지키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주여 주여” 하고 믿는다고 하던 자들이 이러한 변을 당한다는 것은 얼마나 통탄할 일입니까? 세상 사람의 안목으로는 좋은 품성과 훌륭한 인격을 가진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혹은 사람의 칭찬과 인기를 얻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경의 교훈에 따라 계명을 준행하지 않는 자는 참으로 순종하는 자로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참된 신앙은 경건한 태도나 감정이 아니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성경을 잘 알고 신학에 능통하다 할지라도 그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면 참으로 하나님을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한일서 2장 3~5절).  
  그러므로 참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서 온전히 이루어지는 자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론과 철학의 종교가 아니라 목표를 향해서 달려 나가는 실천의 종교입니다. 즉 하늘 본향을 향해 나아가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고 실행하는 종교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오해하고 항상 죄 가운데서 생활할지라도 믿기만 하면 그 죄가 사함을 받고 구원함에 이를 줄 알지만, 거듭남의 경험을 얻지 못하고 품성의 변화를 이루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도 없고 구원함에 이를 수도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요한복음 15장 10절)고 하셨으며, 사도 바울은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립보서 2장 8절)고 하였습니다. 과연 예수께서는 죽기까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시어 우리에게 완전한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그의 발자취를 따라 전적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의 자유라는 것도 결국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동안, 즉 그의 계명을 순종하는 범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순종하는 일을 밀어주고 뒷받침해 주는 것은 날마다 성경을 읽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키고 고집스런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순종할 수 있게 만듭니다. 성경을 순서대로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초보자라면 시편이나 잠언, 전도서, 요한복음, 마태복음, 산상보훈(마태복음 5~7장) 같은 것들을 먼저 읽는 것이 이해하기에 쉽고 성경에 흥미를 느끼게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절제 생활 
  다음은 절제에 관해서 생각해 봅시다. 그냥 절제라고 하면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즉 마음의 절제, 육체의 절제, 생활의 절제, 시간의 절제, 금전의 절제 등 온갖 절제가 필요합니다. 절제 없는 생활은 마치 제동기 없이 달리는 자동차와 같아서 위험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사람은 반드시 마음과 몸을 조절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 마음과 몸을 조절하며 사는 생활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이 가져야 할 생활 태도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르기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린도전서 9장 25절)고 하였습니다. 이 세상의 썩어 없어질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경주하는 자들도 그 몸의 능력을 강화하기 위하여 최선의 절제를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으려는 우리는 그보다 더 절제하고 근신하는 생활을 해야 할 것이 아니겠습니까? 절제하는 생활을 하려면 먼저 마음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장 32절)고 하였거니와 과연 성내는 것을 제어하고 욕심을 억제할 줄 아는 사람이면 참으로 용사보다 나은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등한한 마음이나 게으름이 생길 때 마음의 허리를 단단히 동이는 것, 불의한 생각이 들고 그릇된 오락이 마음을 끌 때 그것을 억제하는 것, 이런 것이야말로 훌륭한 절제입니다. 이런 일이 비록 작은 일 같으나 하나님께서 성을 쳐서 승리하는 개선장군의 승리보다 더 가치 있게 인정하십니다.  
  그리스도인은 몸을 위해 절제 생활을 해야 합니다. 바울은 이르기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리도전서 6장 19, 20절)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몸은 하나님의 것이며 성령이 거하시는 처소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대로 방종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소유주를 기쁘시게 하고 영광스럽게 하기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항상 마음을 깨끗이 하고 절제하며 또한 몸도 깨끗하게 가지고 절제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마음과 몸이 건전해서 진리 안에서 충분한 발달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몸을 건강하게 보전하기 위하여 각별한 주의를 해야 합니다. 건강의 비결은 곧 절제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먹는 것과 입는 것과 자는 것과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음식물은 건강 생활과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건강에 해로운 온갖 음식은 제거하거나 절제해야 합니다.  
 

 건강을 위한 음식
  태초에 하나님께서 우리 인류를 위해 준비해 주신 것은 동물성 식품이 아니라 식물성 식품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창세기 1장 29절).  
  즉 채소와 곡식과 과실을 가장 이상적인 식물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이 원칙은 오늘날도 변함이 없습니다. 육식은 노아 홍수 후에 어쩔 수 없이 사용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러나 육식의 결과로 사람들의 성격이 조급하고 사나워졌으며, 수명도 심히 단축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육식에는 여러 가지 독소들이 있어서 사람들의 건강에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육식 중에서도 사람의 건강에 아주 해롭고 독성이 많은 것은 부정하므로 먹지 말라고 금하셨습니다. 
  레위기 11장에 보면, 소나 양, 염소나 노루, 사슴 같은 짐승은 깨끗하니 먹어도 좋고, 돼지나 토끼, 약대 같은 것은 부정하니 먹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또 물고기 중에서는 비늘이 있고 지느러미가 있는 것만 먹고 다른 것은 다 부정하다고 하였으며, 새 중에는 비둘기나 꿩, 메추라기, 참새 같이 깨끗한 곡식만 먹는 것은 정한 것이요, 독수리나 매 종류, 까마귀, 올빼미, 황새 등 육식을 하는 새는 부정하다고 하였습니다. 그 외에도 쥐나 박쥐 같은 것은 부정하다고 했으며, 개도 가증한 것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기호물 가운데 술, 담배, 마약류, 커피, 차 같은 것들은 습관성을 만들고 신경을 흥분시키는 것들이므로 뇌와 심장, 신장 등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칩니다. 더구나 담배는 폐암의 원인이 되므로 극히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절제의 능력
  우리는 마음과 생활과 식욕과 기호를 절제해야 할 줄 알면서도 그렇게 못하는 수가 많습니다. 가령 술이나 담배 등의 기호품은 끊어버리려고 몇 번 결심해도 잘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그것을 끊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능력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 때 비로소 가능합니다.  
  사도 바울은 말하기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립보서 4장 13절)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인 생활에서 승리를 거두는 방법은 전적으로 그리스도를 신뢰하고 그의 능력을 받는 데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기도와 성경 연구를 계속하는 생활 가운데서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얻어지는 결과입니다.